몇 년 전부터 보수 여당과 소위 ‘조·중·동’으로 불리는 거대 보수 언론들이 입버릇처럼 외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라는 말인데요. 이들은 직역하면 ‘세계 표준’ 쯤이 될 이 말을 거의 신줏단지 모시듯 합니다. 단 하나, ’세계의 대세‘라는 이유에서라는군요. 우리 나라도 든든한 국력을 갖춘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었으니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자는 것입니다. 얼핏 들어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렌지를 '어륀지'라 바꿔 말하면 국민 누구나 영어가 술술술 튀어나올까요? '어륀지'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이들은 우리 학생들이 ‘국제 언어’인 영어를 원어민처럼 자연스럽게 발음하지 못하는 현실을 탓하고, 'Orange'를 ‘어륀지’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영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치자고 합니다. 몇 년 전에 극성맞은 몇몇 ‘강남 아줌마’들이 어린 아이의 영어발음 교정을 위해 혀를 수술시켜 나라 전체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는데, 이젠 국가가 직접 나서서 이 수술을 모든 학생들에게 시켜줄 모양입니다. 하긴 10년 넘게 유지되던 정부 조직도 집권 한 달 만에 제멋대로 뜯어고치는 현 정부이니, 아이들 혀 모양 고쳐주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겠지요.
또 이 사람들은 ’철밥통 공무원‘ 문화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으니 바꾸자고 합니다. 공무원도 모자라서 세계의 흐름에 맞게 일반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도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변하며 우리 나라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강경하고 전투적이라고 비난합니다. 결국 우리 나라 노동시장에는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새로운 노동자 계층이 등장하게 되었죠. 사실 비정규직의 증가는 IMF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현 정권에서 더욱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국가에서 앞장서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인턴이라는 이름의 계약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지금 이런 모양새의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보수 인사들을 보면 민주개혁정부 10년을 제외하고 줄곧 권력층에 앉아 우리 국민들의 윗자리에 군림했던 사람들입니다. 가만 보니 기득권층이 보이는 이러한 태도가 새로운 건 아니네요. 전통적으로 우리 나라의 기득권층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르는 것을 좋아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전근대 시절 권력을 쥐었던 사람들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곧 중국이었습니다. 삼국 시대부터 조선 왕조에 이르기까지 제도에서부터 문화·생활 양식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모든 것을 수입해 우리 나라에 뿌리를 내리려고 했습니다. 특히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율령·과거제·불교’는 우리 나라를 비롯해 중국의 주변국들이 앞다투어 받아들이고 싶어했던 글로벌 스탠더드였지요.
이러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지배층의 광적인 집착은 조선 시대에 극에 다다릅니다. 당시 권력을 손에 쥔 양반들은 중국의 문화를 거의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였고, 또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조선도 조그마한 중국이나 다름없다며 ‘소중화(小中華)’란 별명을 스스로 붙여놓았죠. 이러한 지배층들 때문에 우리 나라 서민들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던 문화는 철저한 ‘비주류’로 밀려나고 맙니다. 판소리나 각종 공예 기술처럼 예로부터 독자적으로 내려오던 우리 문화는 오늘날에도 ‘무형 문화재’로 불리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위태롭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요.
하지만 근대로 들어오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중국’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바뀌었습니다. 조선의 개화파들은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수천 년간 유지해 온 문화를 고리타분한 것쯤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한편 해방 후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데 한몫했던 사람들은 미국을 따라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정치 제도에서부터 시작해 경제·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반을 ‘미국식’으로 고쳐나가기 시작한 것이죠. 이에 대해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비판도 제기되었고,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제3세계 국가들은 우리를 ‘미국의 똘마니’ 쯤으로 취급해 버렸습니다.
↑ 소외받은 사람들에 대한 현 정부의 무관심과 냉대가 빚은 참극, 용산 참사.
그런데 현재의 기득권층이 따르고 싶어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는 '부자나라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뒤에도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의 관심과 투자가 회원국들 중 뒤에서 1, 2등을 다투고 있습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뒤처져 있는 셈이죠. 이러한 점을 감안하며 지난 10년간 민주개혁정부는 부자들에게 좀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지우고 모든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보수 세력은 이러한 노력에 ‘사회주의’라는 색깔을 씌워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이제는 정권까지 잡은 이들은 ’우리 나라는 아직 부유한 국가가 아니므로 사회복지에 많은 돈을 쓸 만한 여유와 능력이 없다‘면서 꼬리를 내려 버립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경제 규모 13위에 OECD 회원국일뿐 아니라 미국 CIA의 ‘월드팩트북’과 IMF, 세계은행에서도 인정하는, 당당한 ‘선진국’, ‘부자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사회복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전세계에서 국민들이 마음놓고 살 수 있는 나라는 몇이나 될까요? 국가가 당연히 책임져야 할 국민의 삶의 질에 관심을 놓은 사이, 어느새 우리 사회는 중산층이 다수를 이루는 바람직한 사회구조에서 빈부의 격차가 뚜렷한 계급구조로 바뀌는 중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나라에서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관점에서, 어린 아이들을 올바르게 기르는 ‘교육’에 큰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제각기 방법은 다르지만, 나라의 새싹들이 세계 무대에서도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죠. 반면 대선에서 ‘교육 예산을 GDP 대비 7%로 증액’하겠다고 약속했던 이명박 정부는 그러잖아도 부족한 교육 예산을 오히려 1조 원 가량 감축했고, 그 돈을 ‘4대강 살리기’라는 대규모 토목 사업에 쏟아붓습니다. 이로 인해 아이들을 기르는 데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선생님’을 꿈꾸던 교육대, 사범대 학생들은 물론이고,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까지 예전보다 빡빡해진 교육 환경에 힘들어하고 있지요. 하지만 현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교원평가제’와 ‘일제고사’를 밀어붙였습니다. 이제 선생님들은 다른 동료 선생님과 학부모들에게 ‘보여줄’ 수업 준비에, 학생들은 당장 숫자로 표시될 등수와 점수로 가득찬 성적표를 잘 받아내기 위한 준비에 매달려야 할 판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교육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당연히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보수 세력에서 그렇게도 좋아하는 교육의 ‘글로벌 스탠더드’일까요?
저는 ‘무조건 우리 것만이 최고’라는 식으로 말하는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나, 우리 문화에 이유 없는 혐오감을 가지고 비하하는 문화적 사대주의에 모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이러한 태도들은 옳지 못하고, 지양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따라서 정말 바람직한 ‘글로벌 스탠더드’가 있다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만을 소리높여 외치면서 정작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글로벌 스탠더드는 외면하고 회피하는 이명박 정부를 보면 그저 한숨만이 나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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