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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께하는 삶을 지향하는 실천언론 경인교육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월미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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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탠더드 (Global Standard)

2010/05/09 20:49 | Posted by 하나되어


 몇 년 전부터 보수 여당과 소위 ‘조·중·동’으로 불리는 거대 보수 언론들이 입버릇처럼 외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라는 말인데요. 이들은 직역하면 ‘세계 표준’ 쯤이 될 이 말을 거의 신줏단지 모시듯 합니다. 단 하나, ’세계의 대세‘라는 이유에서라는군요. 우리 나라도 든든한 국력을 갖춘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었으니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자는 것입니다. 얼핏 들어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렌지를 '어륀지'라 바꿔 말하면 국민 누구나 영어가 술술술 튀어나올까요? '어륀지'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이들은 우리 학생들이 ‘국제 언어’인 영어를 원어민처럼 자연스럽게 발음하지 못하는 현실을 탓하고, 'Orange'를 ‘어륀지’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영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치자고 합니다. 몇 년 전에 극성맞은 몇몇 ‘강남 아줌마’들이 어린 아이의 영어발음 교정을 위해 혀를 수술시켜 나라 전체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는데, 이젠 국가가 직접 나서서 이 수술을 모든 학생들에게 시켜줄 모양입니다. 하긴 10년 넘게 유지되던 정부 조직도 집권 한 달 만에 제멋대로 뜯어고치는 현 정부이니, 아이들 혀 모양 고쳐주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겠지요.

 또 이 사람들은 ’철밥통 공무원‘ 문화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으니 바꾸자고 합니다. 공무원도 모자라서 세계의 흐름에 맞게 일반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도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변하며 우리 나라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강경하고 전투적이라고 비난합니다. 결국 우리 나라 노동시장에는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새로운 노동자 계층이 등장하게 되었죠. 사실 비정규직의 증가는 IMF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현 정권에서 더욱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국가에서 앞장서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인턴이라는 이름의 계약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지금 이런 모양새의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보수 인사들을 보면 민주개혁정부 10년을 제외하고 줄곧 권력층에 앉아 우리 국민들의 윗자리에 군림했던 사람들입니다. 가만 보니 기득권층이 보이는 이러한 태도가 새로운 건 아니네요. 전통적으로 우리 나라의 기득권층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르는 것을 좋아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전근대 시절 권력을 쥐었던 사람들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곧 중국이었습니다. 삼국 시대부터 조선 왕조에 이르기까지 제도에서부터 문화·생활 양식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모든 것을 수입해 우리 나라에 뿌리를 내리려고 했습니다. 특히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율령·과거제·불교’는 우리 나라를 비롯해 중국의 주변국들이 앞다투어 받아들이고 싶어했던 글로벌 스탠더드였지요.

 이러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지배층의 광적인 집착은 조선 시대에 극에 다다릅니다. 당시 권력을 손에 쥔 양반들은 중국의 문화를 거의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였고, 또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조선도 조그마한 중국이나 다름없다며 ‘소중화(小中華)’란 별명을 스스로 붙여놓았죠. 이러한 지배층들 때문에 우리 나라 서민들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던 문화는 철저한 ‘비주류’로 밀려나고 맙니다. 판소리나 각종 공예 기술처럼 예로부터 독자적으로 내려오던 우리 문화는 오늘날에도 ‘무형 문화재’로 불리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위태롭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요.

 하지만 근대로 들어오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중국’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바뀌었습니다. 조선의 개화파들은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수천 년간 유지해 온 문화를 고리타분한 것쯤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한편 해방 후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데 한몫했던 사람들은 미국을 따라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정치 제도에서부터 시작해 경제·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반을 ‘미국식’으로 고쳐나가기 시작한 것이죠. 이에 대해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비판도 제기되었고,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제3세계 국가들은 우리를 ‘미국의 똘마니’ 쯤으로 취급해 버렸습니다.


↑ 소외받은 사람들에 대한 현 정부의 무관심과 냉대가 빚은 참극, 용산 참사.

 그런데 현재의 기득권층이 따르고 싶어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는 '부자나라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뒤에도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의 관심과 투자가 회원국들 중 뒤에서 1, 2등을 다투고 있습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뒤처져 있는 셈이죠. 이러한 점을 감안하며 지난 10년간 민주개혁정부는 부자들에게 좀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지우고 모든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보수 세력은 이러한 노력에 ‘사회주의’라는 색깔을 씌워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이제는 정권까지 잡은 이들은 ’우리 나라는 아직 부유한 국가가 아니므로 사회복지에 많은 돈을 쓸 만한 여유와 능력이 없다‘면서 꼬리를 내려 버립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경제 규모 13위에 OECD 회원국일뿐 아니라 미국 CIA의 ‘월드팩트북’과 IMF, 세계은행에서도 인정하는, 당당한 ‘선진국’, ‘부자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사회복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전세계에서 국민들이 마음놓고 살 수 있는 나라는 몇이나 될까요? 국가가 당연히 책임져야 할 국민의 삶의 질에 관심을 놓은 사이, 어느새 우리 사회는 중산층이 다수를 이루는 바람직한 사회구조에서 빈부의 격차가 뚜렷한 계급구조로 바뀌는 중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나라에서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관점에서, 어린 아이들을 올바르게 기르는 ‘교육’에 큰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제각기 방법은 다르지만, 나라의 새싹들이 세계 무대에서도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죠. 반면 대선에서 ‘교육 예산을 GDP 대비 7%로 증액’하겠다고 약속했던 이명박 정부는 그러잖아도 부족한 교육 예산을 오히려 1조 원 가량 감축했고, 그 돈을 ‘4대강 살리기’라는 대규모 토목 사업에 쏟아붓습니다. 이로 인해 아이들을 기르는 데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선생님’을 꿈꾸던 교육대, 사범대 학생들은 물론이고,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까지 예전보다 빡빡해진 교육 환경에 힘들어하고 있지요. 하지만 현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교원평가제’와 ‘일제고사’를 밀어붙였습니다. 이제 선생님들은 다른 동료 선생님과 학부모들에게 ‘보여줄’ 수업 준비에, 학생들은 당장 숫자로 표시될 등수와 점수로 가득찬 성적표를 잘 받아내기 위한 준비에 매달려야 할 판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교육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당연히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보수 세력에서 그렇게도 좋아하는 교육의 ‘글로벌 스탠더드’일까요?

 저는 ‘무조건 우리 것만이 최고’라는 식으로 말하는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나, 우리 문화에 이유 없는 혐오감을 가지고 비하하는 문화적 사대주의에 모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이러한 태도들은 옳지 못하고, 지양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따라서 정말 바람직한 ‘글로벌 스탠더드’가 있다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만을 소리높여 외치면서 정작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글로벌 스탠더드는 외면하고 회피하는 이명박 정부를 보면 그저 한숨만이 나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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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그 이상의 미래 - Dystopia

2009/12/17 16:14 | Posted by 도라愛夢

디스토피아 [ dystopia ]

[명사]

1.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이 극단화한 암울한 미래상. ≒역유토피아.

2. <문학>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허구로 그려 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학 작품. 또는 그 사상.

꿈꾸는 유토피아, 암울한 디스토피아

 

세상이 살기 좋게 발전해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꿈의 세계, 유토피아(utopia). ‘유토피아’라는 말은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말로 1515년에서 1516년 사이에 영국의 정치가이자 인문주의자인 토머스 모어(1477-1535)가 지은 공상 사회소설의 제목이다. 토머스 모어가 만든 이 말은 그리스어의 '없는(ou-)', '장소(toppos)'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들어‘아무데도 없는 장소’라는 뜻과 동시에 ‘좋은(eu-)’, ‘장소(toppos)’라는 뜻을 연상하게 하는 이중기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현실에서 유토피아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과학이 발달하고 인류가 진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아름다운 미래를 그린다.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지고 우리는 그에 발맞추어 더욱 더 풍요로워지고 있다. 모두가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 과거에는 꿈꾸지 못했을 풍요로운 생활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이 풍요로움의 이면에는 언제나 문제점들이 도사리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증가하고 생활이 편리해졌지만 우리는 그로 인해 환경오염, 인간성 상실, 인간 소외, 국가 권력의 감시, 정보 유출 문제 등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여러 부정적인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며 ‘미래는 얼마나 더 암울하고 왜곡될 것인가’라고 미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인간의 어두운 미래를 예견하는 반유토피아, 디스토피아(dystopia)는 이렇게 나오게 되었다.



 ‘디스토피아’라는 말은 철학자인 제임스 밀(1773-1836)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나쁜(dys)’과 ‘장소(topos)’가 결합된 이 단어는 현대사회 속의 위험한 경향을 미래사회로 확대 투영해 현대인이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고 있는 위험을 명확히 지적하고자 하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유토피아에 대한 낙관적 희망을 버리고 미래 사회의 모습을 비관적이고 우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디스토피아 문학. 디스토피아는 어떠한 모습으로 표현되어있을까?


그들은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

- 조지 오웰 <1984>

 디스토피아 소설하면 바로 떠오르는 작품은 누가 뭐라 해도 조지 오웰의‘1984’가 아닐까 싶다. 1948년에 쓰인 이 작품은 1984년 미래의 모습을 빅 브라더(Big Brother)라는 정치적 상징을 내세운 전체주의적 지배가 과거를 조작하고 현재를 조작하며 인간의 기억과 의식, 무의식까지 관리하는 끔찍한 세계로 그리고 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당에서 하는 말에는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며, 당에서 공무원들의 집에 벽 한 칸마다 설치한 텔레스크린이 그들의 작은 움직임, 사소한 말 한마디까지 낱낱이 감시하고 상부에 보고를 올린다. 또한 사람들은 매일 아침 텔레스크린의 구호에 맞춰 체조를 하고 있지도 않은 타국을 점령하기 위한 체력단련을 시킨다. 당은 상층민의 10% 정도를 제외하고 모든 이들을 자신들의 통제 아래에 둔다. 시나 음악은 물론 개인적인 일기나 낙서, 술, 심지어는 사랑까지 금지시킨다. 유일하게 인정된 결혼의 목적은 당에 봉사할 아이를 낳도록 하는데 있다는 조항까지 있다. 
 
 주인공 윈스턴은 이 같은 당의 통제에 반발을 느끼고 사랑하는 여인 줄리아와 함께 저항을 꾀한다. 그러나 이를 알아차린 당은 그의 주변을 철저하게 조작한 다음 사상경찰을 동원하여 그를 체포한다. 감옥에 끌려간 윈스턴은 당의 철저한 폭력에 의해 범하지 않은 죄를 저지르고 골드 스타인이라는 ‘국가의 적’을 만났다고 자백하게 된다. 그는 인간의 모든 가치를 상실한 채 빅 브라더를 사랑하라는 강요까지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총살형을 기다린다.

-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닌자 어쌔신’의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한 만화를 원작으로 한 SF영화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제3차 세계대전, 핵전쟁이 끝난 2040년 영국. 노스파이어 정권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로 변한 영국은 아담 서틀러라는 대법관 아래에서 더 이상 개인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 된다. 서틀러는 정부 지도자와 피부색, 성적 취향,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비밀경찰을 앞세워 납치해서‘정신집중 캠프’로 끌고 간다. 거리에는 곳곳에 카메라와 녹음 장치가 설치해 사람들을 감시하며 언론을 통제해 독재 체제를 이어간다. 
 
 어느 날 밤, ‘이비’라는 소녀가 통금시간을 어겼다는 이유로 비밀경찰에게 잡혀가려는 순간 'V(브이)'라는
인물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브이는 영국의 ‘화약음모사건’주역인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정부 관료들을 살해하고 다니는 사나이였다. 그는 개인적 원한과 더불어 폭력과 압제로부터 세상을 구할 혁명을 계획하고 ‘가이 포크스 데이’인 11월 5일에 국회의사당을 파괴할 것이라 선포한다. 국가에 의해 오빠와 부모님을 잃은 이비는 브이에 대한 과거를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그에게 점점 끌리고 결국 그의 혁명에 동참하게 된다.


인간의 욕심. 오래 살고, 완벽해지면 정말 행복할까?

- 젬마 말리 <잉여인간 안나>

 서기 2140년, 드디어 ‘장수약’이 개발되어 사람이 늙거나 병들지 않고 오래 살 수 있게 된다.

영원한 건강과 젊음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 된다. 하지만 이 ‘장수약’은 영생을 선사하는 대신 생명을 요구한다. 장수약을 복용하면서 지구는 넘쳐나는 인구와 자원고갈의 문제를 겪게 된다. 이때 사람들이 선택한 방법은 장수 제도라는 것을 만들고 이것에서 탈퇴하지 않는 한 아무도 아이를 못 낳게 하는 ‘포고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이를 어긴 부모는 감옥으로, 아이들은 ‘잉여인간 수용소'로 보낸다. 수용소로 보내진 아이들은 장수약을 복용하는 소위 ‘합법적인 인간’들을 위해 봉사하는 훈련을 받고, 자신은 쓸모없는 인간이고 잉여인간이라는 수치심을 가지며 자신들을 낳은 부모는 지극히 이기적인 사회의 악이라고 세뇌 당한다.

 젬마 말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잉여인간 안나>라는 제목의 ‘잉여’라는 말은 보통 ‘쓰고 남은 것’, 즉 필요 없는 것을 뜻한다. 먼저 태어나 장수약을 복용하면서 영생을 유지하면서 새로 태어난 생명은 필요 없는 존재로 여기는 세태. 인간이 ‘장수약’을 먹고 오래 산다는 전제 하에서 만들어진 공상 소설이지만 인간이 이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다면 새 생명을 충분히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책을 읽는 내내 간담이 서늘하게 만든다.

- 영화 <가타카>

 약으로 사람의 수명이 늘어난 사회가 있는가 하면 유전자 조작의 여부가 한 인간의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도 존재한다. 영화 <가타카>의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이다.

 영화는 한 남자가 자신의 몸에 있는 각질을 열심히 벗겨내고 그 각질들을 불태우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어서 남자는 노란 액체가 든 팩을 허벅지에 매고 손가락 끝을 본 딴 모양

의 물건에 누군가의 혈액을 주사한다. 그 뒤 그가 들어간 곳은 우주비행사들을 양성하는‘가타카(GATTACA.)’. 입구에서 한 혈액 검사 결과 모니터에 뜬 이름은 ‘제롬 모로우’였다. 그러나 주인공인 이 남자의 독백을 통해 밝혀진 그의 이름은 ‘제롬 모로우’가 아니라 ‘빈센트 안톤’이다. 그는 어째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가타카’안으로 들어간 것일까?

 ‘가타카’라는 회사가 있는 사회는‘The not too distant future' ,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에 존재하는 사회이다. 생명공학이 무척이나 발달한 이 사회에서 인간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우성’과 ‘열성’. 유전자 조작을 통해 안 좋은 요소는 모두 미리 배제하고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완벽한 인간
, ‘우성’들은 외모, 성격, 건강, 정신, 수명까지 모든 것이 월등하다. 반대로 유전자 조직을 하지 않고 어쩌다 실수로, 또는 사랑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사람들은 ‘열성’으로 분류당하는 사회가 바로 영화 ‘가타카’의 배경이다.

 가타카(GATTACA)는 DNA 염기 서열의 알파벳인 A, G, T, C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 회사에는 오직 월등한 우성들만이 입사할 수 있으며 열성들이 입사할 수 있는 방법은 청소부가 되어서 들어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주인공 빈세트는 부모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열성’이다. 것도 심장 질환 확률 99%, 신경계 질병 60%, 집중력 장애 89%에 조기 사망 가능성에 예상 수명은 30.2세라는 안 좋은 DNA를 가진 채로 태어난다. 그런 빈센트가 가진 꿈은 바로 ‘우주비행사’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는 심장이 약한 열성이었고 열성인 그를 채용하는 회사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낙담하던 빈센트는 브로커를 통해 사고로 다리를 다친 우성 수영선수, 제롬 모로우에게서 유전자 증명을 사게 된다. 가까스로 가타카에 들어간 빈센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위기가 닥친다. 가타카의 비행사 훈련을 맡고 있는 감독관 한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우연하게도 그 자리에 떨어진 빈센트의 속눈썹이 발견되고 그 자리에서 빈센트라는 사람이 용의자로 지목된다. ‘제롬’행세를 하고 있던 그는 그 이후로 여러 번 정체가 들킬 뻔한 위험을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이룬다.


미래, 너는 어떤 모습?

 디스토피아 문학이 그려내는 미래의 세상은 아름답고도 끔찍하고, 완벽하면서도 두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미래’는 바로 내일일수도 있고 수백 년 후일 수도 있다. 세상이 점점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그 부작용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은 더욱 더 커진다. 인간이기에, 어떻게 변화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인간의 미래이기에 이러한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더욱 무서운 것은 실제 우리 주변에서 디스토피아 문학들이 예견했던 미래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정보 유출, 감시와 정부의 언론 장악, 많은 학자들에 의해 예견되는 지구 인구 포화상태까지……. 더 이상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허구적 디스토피아 소재가 아닌 현실의 모습이다. <1984>와 <브이 포 벤데타>의 세상처럼 언론이 국가 권력에 의해 통제당하고, 개인의 여러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몰개성 세상. <잉여인간 안나>와 <가타카>의 인간 존엄성 상실과 생명 경시가 팽배한 세상. 문학 속의 세상이 현대 대중매체에 의한 획일화 된 가치의 확산과 미디어법과 같은 언론 통제 등의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번 방학, 눈도 많이 오고 손발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에 방구석에 콕 처박혀 짐승돌의 근육질 몸매, 걸그룹의 각선미를 감상하며 침을 질질 흘리는 것은 잠시 멈추고, 디스토피아 문학을 한번 접해보자. 따뜻한 모과차 한 모금과 함께 미디어법, 유전자 조작 등 현재 우리 사회의 시사문제와 함께 우리의 미래는 핑크빛 유토피아일지, 회색빛 디스토피아일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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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물 전쟁 초읽기

 ''물 부족'' 중동대전 도화선 되나

중동의 다음 대전은 현재까지 전통적인 싸움의 원인이었던 땅이나 석유 혹은 종교가 아니라 나날이 희소해지고 있는 귀중한 자원인 물을 둘러싸고 벌어질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분쟁 가운데 대부분은 물을 놓고 벌어졌으며 양측은 모두 극도로 제한된 수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다.

요르단의 국왕 압둘라 2세는 “수자원은 중대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며 아틀라스산맥의 눈 덮인 봉우리에서부터 아라비아반도의 엠프티 쿼터(Empty Quater) 사막에 이르기까지 중동의 대다수 국가들은 현재 물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동 전체가 기본적인 물 수요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 계획을 세우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평화를 위해서 싸우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난국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현재 3억2500만 명이며 계속 급속도로 증가하는 아랍 인구를 감안할 때, 이스라엘과 22개 아랍 국가들의 물 수요는 앞으로 증가일로에 있다.

2007. 05. 28 워싱턴 타임스

클로드 살하니 UPI 국제부장


 세계 곳곳에서 물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 3차대전이 물 때문에 일어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 무슨 소설에 나올 법한 이야기냐구? 한정된 자원인 석유도 아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 때문에 전쟁까지 일어난다니……. 이러한 생각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닐까라고 의심하는 독자들,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크게 외친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중동의 화약고’인 이스라엘. 1967년 시리아로부터 빼앗은 골란고원에서 전체 물 사용량의 30%를 얻고 있는 이스라엘은 골란고원의 물을 모아두는 갈리호의 염도 증가로 농업용수 공급량까지 절반

으로 줄인 상태이다. 이미 아예 농사를 포기한 농민들도 있으며 주변국인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물 소비량이 많은 작물들이 물 기근을 심화시킨다는 비난까지 듣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전 수자원장관은 “물이 부족해지면 우리는 의심할 것도 없이 전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기가 없어 땅이 쩍쩍 갈라지고 곳곳에는 하얀 뼈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 물을 구하기 위해 큰 통을 여러 개 들고 먼 길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물이 주변에 있어도 마실 수 없는 비참한 상황까지 모두 다 사진이나 그림으로 밖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Be water wise'

 ‘Be water wise'. 물을 현명하게? 이런 표현을 처음 보는 사람은 당혹해 할 것이다. 문법에도 맞지 않는 영어 문장이 아닌가. 하지만 ‘나 영어 좀 했어요.’라고 지적하기 전에, 원래는 이 문구의 뜻이 ‘use water wisely' 라는 것을 눈치 챈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Be water wise'는 우리말로 하면 ‘물을 절약합시다. 알뜰하고 현명하게 사용합시다.’ 정도의 뜻이 된다. 이 문구는 캘리포니

아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이다. ‘The Groundwater Foundation'이란 단체에서 홍보하고 있는 이 문구는 현재 캘리포니아의 물 부족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최대 농업지역이고, 가장 살기 좋다고 알려진 캘리포니아가 왜 물 부족으로 곤욕을 치르는 것일까?

 캘리포니아는 연평균 강수량이 254 ~ 304.8mm 정도로 한국의 서울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원래가 사막이었던 곳인데다가 겨울에 한, 두 달 정도 비가 오고 그 외에는 비 구경을 하기 힘든 곳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농업용수로 지하수를 너무 많이 끌어다 썼고, 때문에 겨울에 내리는 비로는 물의 수요를 맞출 수가 없어 물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상기온에 의한 가뭄 때문에 캘리포니아에 물을 공급해주던 시에라 산맥의 눈 녹은 물을 가두던 거대한 댐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주지사는 대대적인 ‘물절약 계획(Water Conservation Plan)'을 실시해 스프링클러를 월, 목에만 가동하게 하고, 물을 틀어 놓고 호스로 세차하는 것을 금지하고, 손님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물을 제공하면 벌금을 물도록 했다. ‘가뭄파수꾼(Drought busters)'이 곳곳에서 규정이 어겨지는지를 감시하게 된 것이다. 식당에 가기만하면 ‘물은 self입니다.’라고 써진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농부들의 자살을 막기 위한 버스

 섬이자 대륙인 오스트레일리아는 심각하고도 지속적인 물 부족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1770년 5월 5일, 천재적인 뱃사람 쿡 선장에 의해 발견된 오스트레일리아는 긴 고립을 끝내고 지구의 나머지 땅들과 하나가 되었다. 하나가 된 오스트레일리아에게 닥친 것은 바로 ‘기후 변화’이다. 이 기후 변화는 오스트레일리아를 비켜가지 않고 그곳은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계속된 극심한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드니에 물을 공급하는 가장 큰 저수지 용량의 40퍼센트도 못 채울 정도로 극심한 가뭄이다. 물이 부족하니 농부들이 따로 사설 댐을 만들어 물을 어떻게든 확보하려고까지 하고 이런 사설 댐 때문에 정작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은 얼마 되지 않아 강의 염도가 증가하고 생태계 교란과 생물 다양성의 파괴, 잦은 산불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면서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다. 캔버라와 시드니 사이에 있는 조지 호수는 이미 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물 대신 풀이 자라서 메리노 양들이 한가로 풀 뜯는 곳으로 변해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농부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그들은 조상 때부터 몇 대를 걸쳐 농토를 개간하고 기름지게 하여 부를 축적해왔다. 그것이 가뭄 때문에 자신의 대에서 끊긴다는 것이 농부들에게는 큰 죄책감으로 다가온 것이다. 특히 농장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농장주의 자살 확률이 높아진다는데 오스트레일리아는 4일마다 1명씩 자살한다는 통계 수치가 나왔다. 놀란 행정 당국에서는 하나의 버스를 동원했다. 이 버스에 농업전문가 두 명과 사회 복지사, 심리학자들이라는 센터링크(국가 사회 복지 기관에 소속된 인원들)들을 태워 각 농장을 달리게 한다. 이들의 역할은 농부들을 외로움과 고독에서 구하고 가뭄의 책임이 혼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물이 없는 결혼식

 이틀, 혹은 사흘, 심하면 열흘 동안 물 부족을 이유로 수돗물이 한 방울도 안나오는 때가 종종 있는 어떤 마을의 한 집안에 결혼식 행사가 있는 날이다. 손님들이 하나 둘씩 도착하기 시작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하려는 순간, 또다시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는다. 물이 나오기를 기다릴 수 없을 때에는 먼 곳에 있는 샘까지 물을 길러 가야하지만 그걸 기다리기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럴 때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근처에 있는 수도계원에게 달려가 돈을 조금 쥐어주는 것이다. 알제리의 모하메드 사이둔이란 마을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다. 이 일을 보면 우리는 단순히 생수를 사먹는 것을 떠나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물 하나로 인해 결정되고 물로 가격지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을 사고파는 시대는 이미 도래 했다. 과거에는 물을 사먹는다는 것은 이해하기도 힘든 것이었다. 그만큼 물이 흔했고 아까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물 사먹는 것은 당연시되었고 물이 이익 창출의 도구가 되었다. 사먹는 물의 시장이 과거와 다르게 매우 커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7천 개 이상의 자국 브랜드와 75개 이상의 수입 브랜드 생수가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물이 그냥 사 먹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생존의 문제로까지 우리에게 와 닿기란 아직은 매우 힘들다.


다시 돌아보는 지구의 물

 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럼 물이 많은 나라가 물이 부족한 나라한테 물을 좀 주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러한 낙관주의는 상당히 오랫동안 물 전쟁이라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었다. 우물 때문에 주먹다짐을 하거나 군대를 보내어 이웃나라에 겁을 준적은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인구 증가, 계속된 가뭄 등이 이러한 상황에 변화를 주고 있다. 물론 물을 서로 사고판다면 잠시 동안 전쟁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예로 이스라엘이 터키에게서 물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서 물을 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 문제의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된다면 물을 가진 나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고 경제적 이득을 가지게 된다. ‘석유’라는 자원 때문에 이 지구에서 벌어진 일들을 생각한다면 ‘물’로 인해 석유 전쟁보다 더한 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문제는 전쟁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물 부족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는 눈에 보이는 곳들뿐만 아니라 많은 곳들이 물 부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자원의 개념을 벗어나 생존의 개념으로 물을 바라보면 이것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정말 목이 마른데 마실 물이 없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물 부족 문제는 그리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물은 생명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물 없이는 생명을 보존하기 힘들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물을 무한이 공급되는 자원이라 생각하고 무감각하게 물을 ‘물 쓰듯’ 쓰고 오염시키고 있다. 물 부족 문제는 더 이상 한 나라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구 전체가 떠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물 부족 문제를 단순히 물만 확보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눈 가리고 아웅 하기 식의 ‘4대강 살리기’ 같은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물 부족 문제는 전 세계가 같이 해결해야할 공통적인 문제이며 확보 문제를 떠나 치수, 관개 등의 방안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하고 물을 좀 더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는 생각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 참고 문헌

물의 미래 - 에릭 오르세나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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